세월호가 이제야 인양되기 시작하는군요..
뱃머리 들기가 시작되었다는 기사입니다.
아직 9명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세월호에 남아있을것으로 생각됩니다....
부디, 원만하고 안전한 인양공정이 되었으면 하네요...
이미지 출처 : 해양수산부 보도자료.
현재 세월호 뱃버리를 단계적으로 들어서 바닥에서 4미터 정도 들어올리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선체 인양위해서 18개 철제받침대를 바닥에 넣는데 작업이 계속되고 있고,
이작업 후에 배꼬리에 8개 받침대 추가 설치하고,
선체를 들어올려서 플로팅 도크에 올린다음 물위로 띄워 목포신항으로 옮긴다고 하네요.
다음달 말까지 인양작업 마무리 한다는게 해수부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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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
1. 2014년 4월 15일 세월호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
2. 2014년 4월 16일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청해진해운 소속)가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인근 해상에서 침몰, 수백 명의 사망·실종자 발생한 대형 참사
3. 탑승자 476명 가운데 172명만이 생존, 300여 명이 넘는 사망ㆍ실종자 발생
4.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4명이 탑승,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 많았던 참사.
5.2014년 4월 16일 오전 급격한 변침(變針, 선박 진행 방향을 변경) 등으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인해 좌현부터 침몰 시작
6. 엉뚱한 교신으로 인한 골든타임 지연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
▷해경의 소극적 구조와 정부의 뒷북 대처 등 총체적 부실로 최악의 인재(人災)발생.
7. 2015년 11월 12일 대법원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 300여 명을 내버려두고
배에서 탈출해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준석 선장의 살인죄를 인정, 무기징역 확정
참조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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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사고를 둘러싼 원인
① 무리한 화물적재와 증축
세월호 출항 예정시각이었던 4월 15일 저녁 6시 30분 인천항엔 안개가 자욱해 많은 선박들이 출항을 포기했으나, 세월호만 2시간 30분 늦게 출항했다. 또 세월호는 안전점검표에 차량 150대ㆍ화물 657톤을 실었다고 기재했지만, 실제로 실린 화물은 차량 180대ㆍ화물 1157톤으로 무리한 화물을 적재했다. 이와 같은 과적 화물은 세월호가 급격한 변침으로 복원력을 잃은 핵심원인 중 하나로 추정되기도 했다.
② 진도 VTS 관제 허술, 골든타임 허비
세월호는 급선회로 배에 이상이 생긴 이후, 사고 수역 관할인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아닌 제주 VTS에 최초 신고를 해 초기 대응시간(골든타임)을 허비했다. 더욱이 세월호가 진도 VTS 관할 수역에 4월 16일 오전 7시 7분에 이미 진입해 있었음에도 진도 VTS는 세월호의 관할 해역 진입 사실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신고를 받고 사고 해역으로 출동한 해경은 여객선 안에 300명 이상의 승객이 남아있음에도 배 밖으로 탈출했거나 눈에 보이는 선체에 있는 승객들만 구조했을 뿐 세월호 내부로는 진입하지 않는 소극적 구조로 일관했다.
③ 승객 버리고 탈출, 선원들 사상 최악의 무책임함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서는 인명구조 등 비상상황이 발생 시 선장은 선내에서 총지휘를 맡아야 하고, 승무원은 각자 역할을 맡아 탑승객 구조를 도와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선장을 비롯한 선원 대부분은 침몰 직전까지 탑승객에게 객실에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하고, 자신들은 배 밖으로 나와 해경 경비정에 의해 제일 먼저 구조됐다. 특히 세월호가 침몰한 곳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조류가 빠르다는 위험천만한 맹골수도(孟骨水道)였지만, 이 지역의 운항을 지휘한 사람은 입사 4개월째인 3등 항해사로 드러났으며, 더욱이 이곳을 통과할 때 선장은 조타실을 비운 것으로 드러났다.
④ 허둥댄 정부, 초동대처 대실패
해양수산부는 사고 발생 후 즉시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세우고 범 부처 총괄업무를 시작했으나, 곧 관련 업무를 안전행정부의 중앙재난대책본부(중대본)에 넘겼다. 하지만 중대본은 사고 현장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수차례에 걸쳐 잘못된 정보를 발표하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여기에 경기도교육청도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잘못된 공지로 공분을 일으켰다.
여기에 해수부ㆍ교육부ㆍ해양경찰청 등이 별도의 사고대책본부를 꾸리면서 사고 관련 대책본부만 10여 개에 달했다. 총리실은 중구난방이 된 대책본부를 통합해 정홍원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수립해 관련 업무를 총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했고, 결국 해수부장관이 다시 범부처 사고대책본부의 장을 맡게 되는 등 혼란이 극에 달하면서 구조 작업은 더뎌졌다.
⑤ 뒤늦은 구조 작업 돌입
세월호가 선수를 제외하고 사실상 완전히 침몰된 시간은 오전 11시 20분 정도였는데, 세월호 실종자 수색을 위해 잠수요원이 본격적으로 투입된 것은 사고가 난 지 8시간이 지난 4월 16일 오후 5시 정도였다. 특히 사고 발생 첫날인 4월 16일은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높았지만, 처음 수백 명의 구조요원이 투입되었다고 알려진 바와 달리 수중수색은 3차에 걸쳐 16명이 투입되는 데 그쳤다.
또 세월호는 사고 초기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어졌지만 3분의 2 이상이 해상에 떠있는 상태를 상당 시간 유지하고 있어 이 시기 구조장비의 빠른 투입이 필요했다. 그러나 선체 부양을 위한 리프트백 투입은 4월 18일에야 이뤄졌고, 야간구조작업을 위한 오징어잡이 어선은 침몰 나흘째, 잠수부들의 이동을 돕는 대형바지선은 침몰 5일째인 4월 20일에야 뒤늦게 투입됐다.
[네이버 지식백과] 4ㆍ16 세월호 참사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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